아빠와 수제비

이렇게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면
익은 김치 푸욱 넣고 끓인 얼큰수제비가 엄청 땡기네요.
밀가루 음식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데
씹을 때 쫄깃한 식감이 참 좋아서 자주 찾게 되는 음식이랍니다.
어려서도 엄마가 밥 하기 귀찮으시면 자주 끓여주셨거든요.
그때마다 이상하게 아빠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시며 절래절래 고개를 저으셨어요.
전 아빠가 수제비를 싫어하시나부다 그렇게만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수제비를 못드시는 이유를 알게 됐지요.
여러분 모두 아시다시피 6.25 전쟁 직후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최악의 빈곤국 중 하나였지요.
할아버지는 결혼 즈음만 해도 공무원이란 어엿한 직장이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자존심 문제로 하루 아침에 때려치시는 바람에
자식 다섯을 비롯해 온 가족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생활고에 직면하게 됐지요.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굶던 말던 선비정신이 더 중요하신 분이었기 때문에 집에서 놀고만 계셨고
할머니께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삯바느질을 하며 간신히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해요.
당시에 정말 귀했던 재봉틀을 할머니께서 가지고 계셨는데요.
가족의 목숨줄인 재봉틀을 누가 훔쳐갈까봐 늘 노심초사하면서 지켜야 했고
아침 저녁으로 장터까지 열살도 안된 어린 아빠가 날라야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선비랍시고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으려고 하셨기 때문이지요.
그때의 재봉틀은 요즘 나오는 작고 예쁜 재봉틀을 상상하시만 안됩니다.
무식하게 크고 무거운 고철덩어리라고 할까요?
어린 사내아이가 어깨에 몇십킬로 되는 재봉틀을 짊어지고 아침 저녁으로 몸을 혹사를 했으니
지금도 저희 아빠는 키가 아주 작으시고 어깨는 비정상적으로 넓으십니다.
나이에 맞지 않은 중노동이 체형까지 바꿔버린 것이지요.
할머니께서 매일 열심히 일하셨는데도 밥을 못먹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해요.
쌀도 사치였던 그때, 곡물이 생기면 바로 양이 많은 밀가루로 맞바꿨고
먹을 수 있는건 수제비 밖에 없었습니다.
수제비 먹는 날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그조차도 못먹은 기간이
일주일 넘게 이어진 적이 있었다고 해요.
온가족이 힘없이 방바닥에 누워 굶주리고 있다가
헐떡헐떡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정신이 혼미해져가자
할머니께서 보다 못해 그 자리에서 억지로 자신의 이빨을 내리쳐서 금니를 뽑으셨지요.
그리고 피가 맺힌 금니를 팔아 밀가루를 사오셔서 그날밤 오랜만에 수제비를 먹는데
모두들 저절로 눈물이 나와 수제비를 목에 못넘기고 꺽꺽대며 울기만 했다고 하네요.
훗날 아빠가 성인이 되어 직장을 가지신 후 할머니의 금니부터 해드렸습니다.
아빠가 그 얘기 하실때 참 뿌듯해 하십니다.
그리고 당시의 아픈 기억 때문에 지금까지도 수제비를 못드시는 것이지요.
아빠는 그때 얘기를 하실때마다
" 우리나라가 왜 그렇게도 못살았을까...어쩌면 못살아도 그렇게까지 못살았을까"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한탄을 하십니다.
그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지니고 계신 아빠의 눈에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믿어지지 않는 기적같은 일인데요.
특히 이번에 미국과 어깨를 마주한 정상회담 소식은 아빠에게 크나큰 기쁨으로 느껴지시나봅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하지요.
그리고 '어쩌면 못살아도 그렇게까지 못살았던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해오는데
우리 부모님 세대들의 희생과 노력 없이 과연 가능했을까 싶습니다.
그분들 덕택에 지금 우리가 이 눈부신 혜택을 누리는 것이겠지요^^
비록 아빠는 못드시지만 오늘은 수제비를 꼭 끓여 보고 싶네요.
아빠를 비롯해 부모님 세대의 고생하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수제비가 가진 의미를 음미하면서 먹으려합니다.
여러분도 오늘 얼큰 수제비 어떠세요?
비가 와서 약간 추운 날이라 더 안성맞춤인 음식인 것 같죠?ㅎㅎㅎ
뜨거운 국물과 함께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덥히는 훈훈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