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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마당

난리법썩 아빠의 팔순 잔치

행복가득
점프일 06-14 11:49 총조회수: 4,799

주말에 아빠의 팔순 생신잔치가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엔 손님을 청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식당에서 조촐하게 최소한의 가족만 모여서 축하드리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문제로 오랜만에 방문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요즘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좀 덜그럭 거리시는 탓인지

이상하게 모든 대화가 스무스하게 이어지지 않았고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소한 감정싸움들이 발생하기 시작했지요ㅠ

 

엄마가 자꾸 '50년'을 말씀하시며 한탄을 하셨는데

아빠가 80세가 되시면서 아빠와 살아온 시간이 반백년을 찍었나봅니다.

그 50년이 얼마나 허망하고 힘들었는지를 굳이 주저리주저리 설명하시면서

점차 아빠도 열이 뻗쳐 올라오는게 보이더라구요.

 

화제를 돌리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뜬금없이 아빠가 남동생에게 

"너 혹시 공처가 아니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말씀의 요지는 너무 와이프의 눈치를 보며 기죽어 사는거 아닌가를 물으시는 거였는데요.

 

외모상으로 보나 목소리의 톤으로 보나 올케가 훨씬 세보이는 면이 있거든요.

아빠 딴에는 남자가 좀 강한 면이 있어야 사회생활도 잘한다는 가부장적인 가르침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당황스런 일은 그 후에 이어졌습니다.

갑자기 훌쩍훌쩍 소리가 나서 울음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니

올케가 잔칫상 앞에 앉은 채로 서럽게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ㅠ

아빠가 당신 아들의 약함을 지적하신 것이 올케에게는 자신의 드센 면을 질책당하는 것으로 들려 

서러움이 폭발한 것이지요.

 

아빠는 거기서 멈추셨어야 했습니다ㅋ

하지만 우리의 아빠 세대들은 부러질지언정 절대 굽히지는 않으시잖아요?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아빠 당신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자 당황하셔서

내가 못할 말을 했냐며 도리어 더 호통을 치시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남동생이 얼굴이 시뻘개져서 아빠에게 대들며 큰싸움이 되고 말았지요ㅠ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무참한 상처를 입으신 아빠는 널 앞으론 자식취급 하지 않겠다며 

'에라이 나쁜놈!' 하고 일어서셨는데 올케가 울며불며 붙들고 늘어져 간신히 주저앉혔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와서, 게다가 이 좋은 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왜 우린 남들처럼 화목하고 화기애애하지 못할까 답답하고 짜증이 북받쳐올랐습니다.

승질 같아선 남동생에게 있는 호통, 없는 호통 다 치고

도대체 이 좋은 자리에서 왜 울었냐면서 올케에게도 싫은 소리 하고 싶었지만

그럼 더 분위기가 싸해질 것이 뻔한지라 꾸욱 누르면서 계속 중재만 열심히 했습니다.

 

아빠와 남동생의 대화는 오랫동안 서로에게 쌓인 분노에 이어 무시, 비웃음, 짜증 등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왔다갔다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풀려가기 시작하더라구요.

결국 아빠의 말씀은 남동생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남동생의 분노는 올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해가 가능한 부분이었습니다.

 

없었으면 좋았을 사건~!

큰 생채기는 남았지만 그래도 얻어진 것들도 있었습니다.

 

올케가 그 자리를 준비하기 위해 1년 전부터 용돈을 모았다고 하네요.

비록 올케의 부모님은 80세까지 살아계신 분이 안계시지만

시댁 부모님이라도 80세 생신을 챙겨드릴 수 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준비했던 자리였습니다.

그 과정을 남동생은 계속 지켜봤던지라 올케에게 한없는 고마움과 안쓰러움을 느꼈고

그래서 아빠에게 대들게 된 것이었지요.

 

나의 부모님에 대한 올케의 진심을 낱낱이 알게 되면서 깊은 감동과 고마움이 밀려와

너무 울어 퉁퉁 부은 눈의 올케를 꼬옥 껴안아주었습니다.

과연 어떤 며느리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시부모님을 위해서 

저렇게 울며 불며 무릎까지 꿇은 채로 매달릴 수 있을까요.

(저희 부모님은 아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전무합니다ㅋ)

 

저에게도 시댁 잔치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가실테면 가셔라~ 부모님의 자유의지이므로...'라는 서늘한 생각으로 

절대 시부모님을 안잡았을것 같거든요ㅋ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요즘 젊은 부부들처럼 다정다감하게 살아온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를 힘들게 하고 공격하면서 끊임없이 불행을 양산하는 경우가 많지요.

하루종일 투닥거리시는 저희 부모님은 그나마 진심으로 대해주는 며느리가 있어서 

큰 복을 갖고 계신듯 합니다.

저에겐 비록 멀리 계신 부모님이지만 이젠 걱정 안해도 되겠다는 안도의 마음을 갖게 되네요.

 

가끔은 '가족이 무슨 의미일까?' 저 자신에게 질문해보곤 합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보았듯이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원망이 아주 작은 사건에도 촉발돼서 폭발이 되고

남들이 봤을 땐 저렇게까지 화를 낼 일이 아닌데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분노와 원망이 끝도 없이 흘러나와 후회할 일들을 저지르게 됩니다.

어쩌면 전생의 원수들끼리 가족으로 만나게 한건 아닐까 싶어요ㅋ

 

남들에겐 한없이 관대한 마음이 가족들에게만큼은 유독 야박하며 인색하고

가족인데 왜 이렇게까지 서로에게 치밀한 잣대를 들이댈까...참 안타깝습니다ㅠ

오랜세월 함께 살아오며 주고 받았던 깊은 상처 탓이겠지요.

그만큼 정과 사랑, 추억도 축적돼 왔을 터인데 희안하게 이 부분만큼은 서로가 서로를 잃어야만 

비로소 인지하게 되지요.

 

한 해외 입양아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가족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은 가만히 있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기 위한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저도 이제는 다른 가정과 비교하며 한탄만 하거나, 부모님과 남동생을 탓하기 이전에,

만나면 행복한 가족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해봅니다.

내 상처에만 푸욱 빠져서 상대를 탓하기보다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거란 이해와 공감이 그 첫걸음이 아닐까 싶어요.

 

1차로 아빠의 카톡에 열심히 응대하기부터~!ㅋ

원래 감정이란 것이 한번에 풀리는 것이 아닌지라

아직도 서운함이 남아계시는 아빠로부터 계속 카톡이 오고 있는데요. 

반복적인 짜증가득한 카톡에 수시로 응대해드려야 하는 면이 귀찮아서 씹는 일도 잦았지만

앞으론 아빠의 말씀을 들어드리고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편들어드려야겠습니다.

그래야 아빠의 상처도 빨리 누그러질테니까요.

 

상상도 못했던 난리법썩 아빠의 팔순잔치~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면 조용조용 넘어갔던 가족모임보다 

훨씬 재미있고 뜻깊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비온 뒤 땅이 굳어지는 건 진리인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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