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버전
소통마당
펼쳐보기   

할머니의 포대자루와 버스기사

행복가득    점프날짜: 2020-11-06 (금) 10:28   조회수(총): 6682

얼마전 종점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서 겪은 일입니다.

버스에 오르던 중 버스 문 바로 앞 땅바닥에

농산물이 가득 든 큰 포대자루 두세개가 놓여있는 게 언뜻 보였습니다.

저는 별 생각없이 카드를 찍고 버스를 탔지요.

 

자리를 잡고 앉아서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두세명의 인부 아저씨들이 버스를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

버스 앞에 도착하자마자 포대자루를 하나씩 들고 버스에 오르시네요.

아저씨들이 포대자루를 들고 버스를 타는 과정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저는 모두 다 그분들 것인가부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버스 앞쪽에 포대자루를 모아놓고는 일제히 뒷자리로 가시는 거에요.

거기까진 별 특별한 상황이 아니었는데요.

바로 어떤 할머니께서 버스를 타시고 바닥에 앉아 포대자루를 정리하시는 모습에

비로소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저씨들과 할머니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요.

할머니를 도와드리기 위해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들어서 날라준 것이었구요.

그 과정이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무언의 과정에서 이심전심으로 진행된 것이었습니다.

 

팍팍한 삶을 살아오신 듯 보이는 할머니는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고 계셨지만

그래도 분명 아저씨들에게 많이 고마워하고 계셨습니다.

 

아무 보답도 바라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우러난 따스한 친절을 보며 큰 감동을 느낀 저는

잠시 마음이 먹먹해졌지요.

그런데 훈훈한 분위기를 얼마가지 못했습니다.

 

휴식 시간이 끝난 버스 운전기사분이 버스에 오르셨고

푸대자루와 할머니를 보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인데요.

요지는 여기가 무슨 시골 마을버스냐며 많은 짐을 들고 탄 할머니를 나무라고 있었습니다.

 

비참한 할머니는 아무 변명도 없이 계속 푸대자루만 만지작거리고 계셨지요. 

방금까지 감동에 젖어있었던 저는 갑자기 분노감에 확 사로잡혀

그 기사분을 노려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시골 마을버스가 따로 있나요? 

버스 타면서 많은 짐을 들고 타면 안된다는 법이 있어요?'

 

할머니를 위해 이렇게 항변하고 싶었지만 워낙 소심한 성격 탓도 있고

사람 많은 장소에서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 저의 비겁함이 너무 싫어지더라구요ㅠㅠ

대신 저 기사를 어떻게 신고해야 하나를 고민하기 시작하며 핸드폰을 끄집어냈지요.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그 인부아저씨들이 버스 앞쪽으로 가시더니

"에유~ 왜 그래요~" 라고 웃으며 기사분을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들은 따스한 표정으로 '너의 입장과 분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었고

애교 반, 다독임 반의 너무나 유연한 대처에

기사분은 머쓱해져서 더이상의 잔소리 없이 버스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도 이젠 편해지셨는지 비로소 자리를 잡고 앉으시자

인부분들은 할일을 다했다는 듯 할머니에게 따스한 눈인사를 하며 다시 뒷자리로 가서 앉았지요.

 

부드러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요!

엄청 똑똑하고 많이 배운 사람이 지식과 논리로 하나하나 따지며 기사분의 입을 틀어막았다 할지라도

저에게 이렇게 강인한 기억으로 남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패자가 아무도 없으면서 모두 다 행복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유연함!

이런 것이 바로 지혜인 것이지요.

 

자존심, 사고방식, 무슨무슨 주의 등등

부러지지 않는 뻣뻣한 생각들을 마음 속에 굳이 세워놓고 

우린 얼마나 많은 분노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상처들을 서로 주고 받고 있는지...

그 인부분들께 참 많은 것을 배운 그날을 앞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그래도 그 기사분을 신고하고 싶은데ㅎ

할까요 말까요?ㅋㅋ 

나는야 뒤끝작렬 아줌마ㅎㅎㅎ

오늘도 모두들 최고루 행복하고 좋은 날 되시기 바래요~!

 

다음으로 가기 이전으로 가기 맨위로 가기 맨아래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