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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와 부모님

행복가득    점프날짜: 2022-02-07 (월) 14:41   조회수(총): 2383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작년 한해 동안 

제 친정 아빠와 시어머니께서 동시에 치매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보통 치매는 초기 단계에서 발견되기가 참 어려운데요.

제가 직접 경험을 해보니 그럴 수 밖에 없겠다 싶더라구요.

 

단순한 건망증과 치매가 잘 구분이 안갈 뿐 아니라

막상 내 부모에게 그 일이 닥칠 경우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방어기제가 저도 모르게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계속 이상현상을 무시하게 되구요.

결국 제3자가 눈치를 채고 언질을 주는 상황까지 가더라도

가족들은 끝까지 부인하면서 단순 노화현상으로 넘겨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초기 치료적기를 놓치게 되고

나중에 중기 이후에 접어들며 급속도로 진행이 빨라지는 때에야 

비로소 현실과 맞닥뜨리게 되지요.

 

다행히 엄마는 할머니의 극심한 치매를 한번 경험해보셨기 때문에

아빠 치매 초기에서 오는 정말 알아차리기 힘든 단순한 신호를 놓치지 않으셨고

바로 엄마가 아빠를 치매센터에 모시고 가서 검사를 받으시게 했습니다.

덕분에 MRI상에 뇌가 쪼그라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의사분들이 한결같이 해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치매임을 인정하면 치매가 아닙니다. 치매 환자분들은 끝까지 본인이 치매임을 인정하지 않아요"

천행으로 저희 아빠는 할머니의 경험을 통해 빨리 병을 받아들이셨답니다.

그 후 매일매일 영어 공부, 신문 요약, 색칠 공부, 새로운 악기 공부를 하시면서 

치매와 열심히 싸워가고 계십니다.

최근의 검사 결과에서는 훨씬 기억력이 호전되셨다고 하니

치매가 노력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함을 여실히 실감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경우 그닥 긍정적이지는 않은데요.

우선 제가 몇년전부터 이상하다 싶어서 몇번이나 남편이나 형님들께 말씀을 드렸지만

노인이 그럴 수 있다며 다들 넘겨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워낙 시어머니께서 평상시 생각이 많으시고 

머리가 총명하신 분이셨기 때문이지요.

 

한여름 더운 날 집을 못찾고 헤매신 적이 있었는데 그날도 모두들 날씨 탓으로 돌렸고

제가 억지로 치매센터에 모시고 가긴 갔지만 문진검사를 통과해야 병원과의 연계가 이루어지더라구요.

너무나 단순하고 형식적인 문진검사에서 (예를 들면 "어머니, 지금 계절이 뭐에요? 여기가 몇층이에요?" 이런 종류의 질문들)

오히려 시어머니께서 며느리가 치매로 의심한다는 심증만 확실히 굳히시는 바람에 

한동안 된통 기분이 나빠하셨지요ㅠ

다시 섣불리 치매센터에 모시고 가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시어머니께 일어나는 일들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이번엔 대학병원으로 바로 가서 인지검사를 받게 됐는데요.

거기서 치매 중기로 나온 것이지요ㅠㅠ

가족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일어난 수많은 일들과 매일매일 전쟁을 겪고 있답니다.

 

저희 아빠 케이스와 다르게 시어머니께서는 본인의 치매를 절대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학교 문턱에도 못가보신 세대라 미신적인 고정관념으로만 평생을 사셨고

그래서 병원에 대한 불신으로 똘똘 뭉쳐 약도 거부하고 계시구요.

약 먹이기 위한 사투 뿐 아니라 시어머니의 자제분들 및 각각의 가족들이 보여주는 묘한 분위기를 보며

저는 최근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답니다.

 

평생 자식만을 위해 사시다가 갑자기 치매 환자가 되어버린 한 사람을 바라볼때 

느껴지는 안쓰러움과 슬픔...

그리고 부모가 치매임이 확정되는 순간,

그간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던 안정과 균형이 파괴되기 시작하면서

각자 자신의 가족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이기심을 목격하며

역시 사랑은 내리사랑일 수 밖에 없는 건가 한탄도 절로 나오네요.

 

물론 다들 어머니를 걱정하고는 있지만 본인들의 가족이 먼저이기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고

본인들이 원하는대로만 보려고 하며 다른 누군가가 해결해주길 바라는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저희 시댁만 그런게 아니더라구요.

치매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어떤 분과 통화를 했는데

그분 역시 치매 판정 받으신 직후 첫 명절이 그렇게 힘드셨다고 하네요.

모든 자식들의 생각이 달랐고 모두의 이기심이 충돌한 흉흉한 명절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하기야 제 친정이라고 별다를까요ㅠ

아빠를 엄마에게만 맡기고 바쁘다는 핑계로 잘 찾아뵙지도 못하고 있으니

어쩌면 저도 저의 일상을 부모님으로 인해서 침해받고 싶지 않은 

극도의 이기심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오랜기간 치매 할머니를 모셨던 엄마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시네요.

"이제부터 시작이다. 벌써부터 지치면 안돼"

겪어보니 육체적인건 아직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그런데 가족들간의 의견조율이나 대화 과정에서부터 

진이 빠지는 느낌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고 키움에 있어서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오롯이 쏟아부으셨을 사랑과 비교해봤을 때

자식들의 잇속 계산은 왜 이리 빠를까요?

자식들 역시 각자의 자식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걸까요?

이렇게 세상은 내리사랑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법칙일까요?

 

해답이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결론을 낼수도 없겠지요.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구요.

그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 오늘 최선을 다하자 이 마음 하나만 갖고 시어머니께 집중하려 합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시어머니 친구 분이 놀러오셨다고 하네요.

남편이 약 복용 때문에 잠깐 들렀는데

시어머니와 친구분께서 일일드라마를 보시면서 계속 재잘재잘 대화를 나누시더라며

오랜만에 참 행복해보이셨노라며 좋아하더라구요.

 

제가 아무리 시어머니 옆에서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해도

친한 친구분과의 공감대를 따라갈 수는 없겠다 싶어요ㅎㅎ

친구분께서 좀 오래오래 계셨음 좋겠는데 어쩔지 모르겠어요.

 

여러가지 악조건으로 시어머니의 치매가 과연 얼마나 빨리 진행이 될까 겁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기억이 있으신 동안엔 예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채워드려야겠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오늘 하루는 그동안 당연시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며 한없는 감사로 바꿔보고 싶네요.

추운 날씨에 감기조심, 코로나 조심, 부모님께 꼭 안부카톡 날리시는 하루 되세요~~^^

오늘도 모두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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